우리 형법에 ‘증거 인멸죄’가 있습니다. 증거를 없애버린 죄를 묻겠다는 것이지요.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A씨가 있습니다. 흉기를 사용했습니다. 죄가 발각될까 두려워 흉기를 멀리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 경우 A씨는 ‘증거 인멸죄’로 처벌을 받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씨에게 증거 인멸 혐의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뒤 이를 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에까지 법이 개입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법은 그 같은 인간의 본성에 눈을 감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상식은 뻔뻔함까지 참아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윤창중 씨의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윤씨는 ‘초특급 메가 사고’를 치고 지난 9일 새벽 1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윤 씨가 귀국해서 우선 처리한 일이 무엇일까요? 귀국행 비행에서 ‘항공 마일리지’가 자동 적립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윤 씨가 항공사에 직접 적립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항공 마일리지’는 적립된 비행 거리만큼 나중에 공짜로 해외에 나갈 수 있는 현금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 와중에도 마일리지를 챙길 수 있는 윤 씨의 정신력이란…. 차라리 피해 인턴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없었던 일로 하자’는 증거 인멸을 시도했더라면 측은하기라도 했을 텐데 이건 제가 다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일각에서는 “자기 카드로 결제했는데 마일리지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 만합니다. 일리는 있습니다.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는 행동이니까요. 하지만 윤 씨의 그 ‘인간의 본성’은 나가도 너무 나갔습니다. 국격을 오물에 빠뜨린 당사자가 고국에 도착해서 기껏 한다는 게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채우는 일이었다는 건 뻔뻔함 말고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법은 비난할 수 없어도 상식은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