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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과 함께 귀농 정봉주 前 민주당 의원'BBK 저격수'
    Sweet Day/삶의 향기 2013. 4. 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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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함께 귀농 정봉주 前 민주당 의원'BBK 저격수' 봉화 山村에 살으리랏다…

    "농민들이 일단 사과 4000개 부터 팔아보라네요"

     

    조선일보 | 김신영 기자 | 입력 2013.04.15 11:06

    "농촌 정신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구호로 하겠습니다. 자, 제가 '우리가' 하면 '남이니껴!' 아셨죠?"

    '경상도의 동막골'이라는 경북 봉화 비나리마을. 산이 둘러싼 촌락(村落) 한가운데 있는 2층짜리 마을 학교 식당에 주민 12명이 모여 앉았다. 이 마을 풍년제가 열린 날이었다. 식탁 위에 줄줄이 놓인 봉화산(産) 막걸리 '청량주'와 경북 소주 '맛있는 참'이 절반쯤 비었다. 손 거칠고 얼굴 그을린 농민들 사이에 티 나게 다르게 생긴 흰 얼굴 사나이가 일어서서 건배사를 외친다. BBK 사건 허위 사실 유포죄로 1년형을 살고 지난해 12월 만기 출소한 정봉주민주통합당 의원이다.

    ↑ [조선일보]경북 봉화로 삶의 터전을 옮긴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오른쪽서 둘째)이 풍년제가 열린 지난달 29일 저녁 지역 농민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BBK 사건 허위 사실 유포죄로 1년형을 살고 지난해 12월 만기 출소한 정봉주는 "'껴ㆍ끼ㆍ꼬'로 끝나는 경북 사투리를 배우기가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 봉화=김신영 기자

    ↑ [조선일보]이달 중 나올 정봉주의 헬스 책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 표지에 실린 사진. 감옥에서 몸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감자처럼 옷을 입고 찍었다.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제공

    "'남이가'는 경남 사투리고 경북은 '껴·끼·꼬'잖아요? 그러니까 '남이니껴'가 맞죠? 그렇죠?"

    '허허허허' 웃음소리 사이로 퉁명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거 아인데(아닌데), 참…. '남이니껴'가 아이고 '남이껴'인데…."

    1년 만기를 채우고 출소한 정봉주는 지난달 7일 "협동조합운동을 하겠다"며 부인과 중학생 딸과 함께 경북 봉화의 산골짜기 농촌 마을에 터를 잡았다. 봉화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80%가 넘는다. 봉화 정씨라는 점 외엔 연고도 없다. '껴·끼·꼬' 연습만으로 보수적 농촌 마을에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정봉주가 정착한 주택의 임차료는 1년에 500만원. 방 2개가 딸린 집에 1년 넘게 살면 이 중 200만원을 돌려준다. 도시 사람을 불러 모으려고 농림부의 지원을 받아 비나리마을이 지난해 지은 '귀농인의 집'이다. 정봉주는 집이 너무 춥다면서 창문마다 '뽁뽁이(공기 방울이 들어 있는 비닐)'를 붙여 놓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존경해 온 정도전이 은거하며 공부했던 지역이라는 점도 봉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 동네도 뜬다" "아니다, 나쁜 물 든다"


    이날 저녁 술자리는 풍년제의 뒤풀이 격이었다. 주민회에서 주관한 자리는 회비를 1인당 1만원씩 걷어 마련했다. 여기 모인 농민들은 자신을 '봉 도사'라고 칭하며 건배사를 외치는 '전입자 정봉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론을 아직 못 내린 듯했다. 난데없이 작가 이외수가 소재에 올랐다(이외수 혼외 자식 양육비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었다).

    "봉화가 복 받았다 아입니껴. 우리가 화천을 얼마나 부러워했니껴. 화천이 이외수씨 때문에 겁나 뜨지 않았능교." "하이고, 근데 누구는 나한테 그라대. '봉주르(정봉주의 별명)'랑 어울리지 말라고. 나쁜 물이 든다카대."

    정봉주가 받아쳤다. "한 친구는 새누리당으로 군 의원 나가려고 그러는데, 나랑 친하게 지내면 공천 안 준다고 한다면서 토로를 해요. 여기는 완전 '묻지 마 투표'라서 민주당으로 나오면 득표율이 오프로(5%)지, 오프로, 하하…." '묻지 마 투표'라는 말에 분위기가 약간 썰렁해졌다. 정봉주는 "아니, 저쪽도 묻지 마 투표는 하지만…" 하면서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휴대폰에는 이달 중 나올 정봉주의 헬스 책에 실릴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책 제목이 '골방이 너희를 몸짱 되게 하리라'란다. 부제는 '빠삐봉 정봉주의 맨손 헬스'다.

    "이게 감옥서 만든 몸 아닙니까, 캬…. 이게 너무 야성(野性)이 과하다고 출판사에서는 주저하는데, 어르신들 보시기엔 어떠세요?" 화면 속엔 검은 러닝셔츠 차림으로 가슴 근육 운동을 하는 정봉주가 보였다. 얼굴엔 핏발이 서 있고 셔츠는 당장에라도 찢어질 듯하다. 주민들 사이에서 웃음과 비명이 함께 터져 나왔다. "에고, 흉측해라!" "근데 저건 근육이 제대로 안 붙었는데. 하하, 오래는 못 보고 있겠다."

    정봉주는 "요즘도 매일 동네 헬스장에서 2시간 30분씩 운동을 한다"며 '헬스의 정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팔굽혀펴기 50개밖에 못 하겠으면 기를 쓰고 두 개를 더 하는 것, 육체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바로 그것이 헬스의 정신입니다."

    한 농민이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뭐하러 그라고 기를 쓰니껴. 우린 내리 농사만 지어도 몸짱인데…."

    ◇"사과 4000개 팔아 보시오"

    정봉주는 지난 한 달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점심, 저녁은 대부분 마을 사람들과 먹는다. "호기심 때문인지 만나자고 찾아오는 이 지역 사람이 진짜 많아요. 밥 먹고 술 먹는 게 일이에요. 다행히 밥값 술값은 찾아오시는 분들이 내시대. 틈틈이 돈 벌러 강연도 나가고…."

    술자리에 앞서 마을 학교에서 열린 '협동조합운동을 통한 새로운 농촌 공동체의 건설' 세미나에서 정봉주는 약 한 시간 동안 자신의 '귀농 구상'을 농민들에게 설명했다. 그의 목표는 비나리마을을 중심으로 농민 협동조합을 만든 다음 이를 전국적 네트워크로 확장시켜 봉화의 농산물을 좋은 값에 파는 것이라고 했다. 마을 학교 2층 강의실에 모인 농민 중에는 휴대전화로 녹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봉주가 마이크를 잡고 앉은 간이 단상 뒤 창문 너머로 때때로 경운기가 탈탈거리며 지나갔다. 교실 한쪽에선 한 여성 농민 등에 업힌 아기가 틈틈이 울음을 터뜨렸다.

    "여러분, 김연아가 광고하는 에어컨 왜 삽니까? 김연아가 에어컨 만들 줄 아나요? '김연아가 품질을 보장한다' 이거 아닙니까. 제가 농산물 품질을 보증하겠다는 거죠. 그럼 마트까지 일곱 단계 거칠 필요 없이 협동조합을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60대 농민이 웃으며 말했다. "나아는 풍각재이(나는 풍각쟁이)다, 이겁니껴?" "네? 풍각쟁이가 뭐죠?" 다른 농민들이 답한다. "딴따라!" "우리 장 설 때 제일 주인공이 풍각재이 아닝교, 하하." '풍각쟁이'는 시장이나 집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 돈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바로 그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 가서 오리 농법 갖고 유기농 농사를 했죠. 그런데 그게 포인트가 조금 어긋난 것 같아요. 그분의 강점이 뭐였느냐 하면, 마케팅 파워와 홍보력이었어요. 그걸로 전국을 뛰어야 했어요. 거기서 '꽥꽥' 하는 오리하고 싸울 게 아니라요. 저는 농사는 못 짓지만, 제가 직접 전국을 뛰면서 봉화의 농산물을 팔겠다는 거죠. 김연아는 광고비가 수억인데, 전 그냥 하겠다니깐요. 이런 걸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하는 거예요. 제 팬카페 회원이 20만명입니다. 트위터 팔로어는 50만명이고요."

    정봉주의 호소가 구애(求愛)에 가까워졌다. "제 솔직한 심정은, 염(殮)은 여기서 하고 싶다는 겁니다. 감옥에서 완전 그 생각을 굳혔습니다."

    한 농민이 손을 들고 물었다. "의원님요, 우리가 서울서 온 유명하다는 사람들한테 배신을 마이(많이) 당했다 아입니까." "제가 배신을 하면 그냥 저를 통째로 잡수세요, 하하." "그라믄… 우리 마을에 맛 좋은 사과가 좀 있는데. 그것부터 좀 팔아 보겠능교." "얼마나 있는데요?" "한 삼사천 개 있는데, 저농약사과라 그냥 먹어도 된다 아잉교." "걱정 놓으십시오. 제가 팔겠습니다. 정봉주가 오늘부터 봉화 사과 홍보대사 하겠습니다."

    의기양양한 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농민들이 자리를 뜬 후 정봉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큰일 났다. 4000개 어떻게 팔지…. 이러다 초장에 잘리겠어, 이거. 기자 양반, 기사 나갈 때 사과 판매 사이트 주소(http://binari.invil.org) 하나 넣어주면 안 될까?"

    그는 말했다. "어쨌건 무엇이라도 하려면 일단 여기서 한 획을 그어야 해요.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정봉주, 봉화에서 뭘 했는데?' 하고 물을 거예요. 농촌 분들은 또 현실적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저에게 마음을 열지 않겠죠. 그러니까 지금은 사과 4000개 판매, 그걸 성공시키는 게 급선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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