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독자와 함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털 탈모’가 있나요? 코털이 빠지면 코딱지가 안 생길까요? 코털이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기가 안 좋을 때는 입보다 코로 숨 쉬는 게 낫다던데, 콧털이 아예 없어도 코로 숨 쉬는 게 더 나을까요? 코털이 전혀 없으면 병에도 더 잘 걸릴까요? 궁금해요.(박세희)
킁. 기사를 쓰기 전 거울을 봅니다. 오늘은 콧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코털이… 없 군요. 제 코털도 콧구멍 바깥으로 자주 고개를 내밉니다. 머리카락 다듬기도 귀 찮은데, 코털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현대인의 삶은 참 피곤해요. 코털에 얽힌 우 스갯소리가 문득 떠오릅니다. 정치인과 코털의 네 가지 공통점이라네요. ① 뽑 을 때 잘 뽑아야 한다. ② 잘못 뽑으면 후유증이 오래간다. ③ 지저분하다. ④ 좁 은 공간에 많이 뭉쳐 산다. 말 되나요?
질문으로 돌아와 ‘코털 탈모’를 집중 해부 해보겠습니다. <한겨레21> 936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왜 모두 대머리가 되지 않을까 요 편)에 등장하셨던 허창훈 분당서울대병 원 피부과 교수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습 니다. 교수님, 코털 탈모가 존재하나요? “물 론이죠. 털이 난다면 신체 어느 부위든 탈 모가 생깁니다.” 역시, 인체는 신비하군요. 허 교수는 “콧구멍 속 탈모는 머리카락 탈모와는 원인이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코털이 빠지는 원인은 원형탈모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동전 크기로 머리 카락이 뭉텅이로 빠지는 증상처럼 말이죠. “코털이 빠진다면 눈썹이나 겨드랑이 털, 다리털도 빠지는 게 아닌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원형탈모증은 호르몬 이상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전문용어로는 ‘자가면역질 환’이라고 합니다. 몸 안의 면역체계가 내 몸에 난 털이 내 몸에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죠. 이 때문에 자꾸만 털을 밀어내는 것이죠. 그 러나 코털 탈모 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실, 코털은 늘 ‘제모’의 대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콧구멍 속에 털이 없다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드물고, 정작 본인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코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호흡기로 들어오는 먼지를 걸러주는 겁니다. 머리카 락이 두개골을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겨드랑이털·음모가 마찰 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듯이 말이죠. 무모증이나 전신성 탈모증을 앓는 경우에 도 대부분 콧구멍 속에 하얀 솜털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코딱지가 아예 안 생길 수는 없겠죠. 그러나 털이 적으면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 등에 취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코털이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모발 이식 수술을 할 때는 별 쓸모 가 없답니다. 수염·가슴털을 채취해 머리에 심는 경우는 있지만, 코털은 ‘지저분 해서’ 그렇게 쓰지 못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코털은 머리카락에 견줘 굵고 짧기 때문이기도 하다네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코털을 쥐고 뽑으면 위험하답니다. 뿌 리째 뽑으면 콧구멍 속에서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허 교수는 “콧구멍 바 깥으로 나온 코털만 일정한 길이로 깎아주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합니다. 자, 그 럼 정치인과 코털의 네 가지 공통점도 바꿔야겠네요. 뽑을 때 잘 뽑아야 한다 → 자를 때 제대로 잘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