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남의 노래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빈대떡은 김치, 불고기와 함께 3대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녹두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 불린 뒤 맷돌에 갈아서 만든 반죽을 돼지기름으로 부쳐내는 게 요리법이다. 빈대떡은 한반도 전역에서 먹던 음식이다. 녹두가 흔했기 때문이다. 빈대떡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과 관련, 여러 설이 전한다. 가장 흔한 게 빈대(賓待)떡, 즉 귀빈을 접대하는 떡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다.
최세진이 쓴 ‘박통사언해’ 등의 문헌을 예로 들어 병저(餠藷·밀가루나 옥수수 수수 등을 갈아 납작하게 부친 떡)의 중국식 발음인 ‘빙쳐’에서 차츰 ‘빈대’로 바뀌었다는 설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빈대떡에서 흥미롭게 봐야 하는 것은 ‘빈대전’이 아니라 ‘빈대떡’이라고 한 대목이다. 조선 시대 흉년이 들면 부자들이 큼지막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 빈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빈자(貧者), 즉 가난한 사람들의 떡이어서 빈자떡이라고 하다가 빈대떡으로 바뀌었다는 것. 민초들의 끼니 걱정을 해결하고, 허기를 달래주다 보니 ‘전’이 아닌 ‘떡’이 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1950년대 대폿집 이름으로 유독 ‘과부집’‘쌍과부집’ 같은 이름이 많은데 이는 전쟁 미망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장사가 빈대떡장사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600년 서울의 기억을 가장 오래 품어왔고 뒷골목 문화를 대표하던 피맛골은 우리가 너무 쉽게 허물어버린 귀중한 ‘문화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