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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득 돌아본 '그 때 그 곳'>맨 뒷자리 첫키스의 추억…'일탈'의 순간들
    Sweet Day/삶의 향기 2013. 3. 3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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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돌아본 '그 때 그 곳'>맨 뒷자리 첫키스의 추억…'일탈'의 순간들

    ‘청춘의 기억’ 오롯이

    문화일보 | 예진수기자 | 입력 2013.03.29 12:21 | 수정 2013.03.29 15:01

     

    한 정치인이 첫 키스의 추억은 동시상영관 뒷자리였다고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때리고 부수고, 총을 마구 쏘아대는 서부극을 볼 때에도 맨 뒷자리에서의 첫 키스라는 신성한 밀교의식은 엄수됐다. 지방과 변두리 재개봉관(사진)에서는 낡은 영사시설 탓에 비가 줄줄 내리는 화면이 펼쳐졌고 담배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보통 1시간 40분짜리 오리지널 필름이 동시상영관으로 내려가면 10∼20분 정도가 단축돼 영화 내용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1970∼1980년까지 동시상영관은 비싼 영화 관람료 때문에 개봉관을 감히 찾지 못하던 '할리우드 키드'들의 학교이자 인생극장이었다. 삼류극장의 풍경은 늘 따뜻하다. 1960년대 삼류극장에서는 쇼도 보고 영화도 본다는 경영방식으로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영화 관람료가 20원일 때 극장쇼는 40원 이상을 받아도 항상 만원이었다.

    1960년대 말 명문 K여고를 다녔던 한 여성은 지금으로 보면 아주 건전한 영화인 험프리 보가트, 에바 가드너 주연의 '맨발의 백작부인'을 봤다고 친구가 퇴학을 당했다고 돌아봤다. 단지 키스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이 영화가 '학생 관람 불가'판정을 받았던 시대였다. 또 다른 여성은 동시상영관에서 '학생 관람 불가' 영화를 보기 위해 꾀를 썼다. 껌팔이 소녀로 분장하고 영화를 봤다는 것. 외삼촌이 극장 주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동도극장이 단골이란 건 엄마에게도 반 친구들에게도 비밀이었지만 따로 친구들하고도 곧잘 극장 출입을 했다. 어둠 속에서 흰 깃은 단박 눈에 띄게 돼 있어서 날쌔게 안으로 구겨넣고 시치미 떼고 앉았고 누가 학생인 걸 모를까마는 세상을 감쪽같이 속여먹은 것 같은 쾌감을 맛보곤 했다."

    시인 유하도 '파고다 극장을 지나며-80년대의 끄트머리'라는 시에서 '아무리 따라지라도 왜 그리 슬프기만 하던지/ 동시상영의 세상읽기/ 나를 얼마나 조로하게 했던지'라고 그리워했다.

    재개봉관으로 불리던 대왕, 성남, 장미, 경보, 양지, 대흥, 계림, 미아리, 삼양, 아폴로, 세일, 영보, 천지, 동일, 연흥, 우신, 동양, 평화, 오스카, 새서울, 중화, 금성 등은 아름다운 청춘의 연애 장소였으며, 일상에서 벗어난 환각과 상상력이 몸을 푸는 장소였다.

    서울 공덕동 로터리에 있었던 경보극장 바깥 휴게실 난로가 연탄난로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동시상영관의 관람료는 500원에서 2000원까지 다양했다. '천녀유혼'이 세운상가에 있는 아세아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됐고, 전설적 영화 '영웅본색'은 화양극장의 은막을 수놓았다. 수유리 세일극장은 스크린도 크고 좌석도 3층까지 있는 대형 삼류극장이었다.

    뒷골목에 있는 재개봉관은 사춘기 소년들의 '욕망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게임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고삐리(고교생의 속칭)들은 우르르 떼를 지어 변두리의 동시상영관을 찾았다. 성인식을 치르듯 에로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를 봤다. 극장입구의 야한 영화 포스터가 이들을 유혹했고, 화장실에 콘돔 자판기가 설치된 동시상영관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시대가 오면서 동시상영관은 설자리를 완전히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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