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가 무려 네 개였다. 박지성의 골이 들어가는 순간, 은퇴한 골게터 뤼트 판 니스텔로이의 트위터는 그의 이름을 이토록 강하게 내뱉고 있었다. 맨유 시절의 팀 동료였던, 지금은 PSV 에인트호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는 이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에게도, 박지성은 그렇게 남다른 존재인 모양이다. 물론, 한국의 축구팬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박지성이 25일 새벽(한국시간) 헤라클레스戰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박지성이 마침내 골을 터뜨렸다. 25일 새벽(한국시간)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4라운드 헤라클레스전에 교체 출전한 박지성은 팀이 패배 위기에 몰린 후반 41분, 끈덕진 플레이로 기어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오랜 시간 다져진 몸과 포기하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이 만나 얻어낸 박지성다운 골.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홈팀 골대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역전을 노리려면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이 냉큼 공을 집어들곤, 그제서야 원정 팬들을 향해 간결히 답례했다. 그마저도 하프라인을 향해 달려가는 길에 아주 잠깐 행해진 세리머니였다. 경기는 결국 1-1로 끝났지만, 고작 20여분을 뛴 박지성의 이날 플레이는, 그가 누구인지를 명징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시합이었다.
박지성이 이날 넣은 골은, 그가 공식 경기에서 (2012년 1월 맨유 유니폼을 입고 리버풀을 상대로 FA컵 골을 넣은 이래) 1년 7개월만에 넣은 득점이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서는 2005년 4월 26일 비테세전 이후 무려 8년 3개월만에 골맛을 봤다. 참고로 PSV는 과거 박지성이 골을 넣은 리그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10전 10승) 비록 이날은 승리하지만 못했지만, 팀을 낭떠러지에서 구해내는 골을 넣었다는 점에서 박지성의 높은 기여도는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PSV와 코쿠 감독이 박지성을 영입할 때까지도 박지성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자신이 고른 등번호 숫자 33만큼이나 적지 않은 나이, 지난 1년 QPR에서 보여준 어색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박지성의 가치를 잠시나마 잊게 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 말 없이 피치 위에서의 플레이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지난 주중에 열린 AC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그는 자신이 여전히 최고 수준의 축구 무대에 걸맞는 사람임을 보여주었고, 복귀골을 터뜨린 헤라클레스전에서는 자신이 팀에 필요한 역할을 모자람없이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박지성이 올 시즌 PSV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될 것임을 예감케하는 장면들이다.
박지성은 오늘도 달리고 또 달린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실, 코쿠 감독은 헤라클레스 전에 박지성을 무리하게 투입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PSV에게는 어마어마한 배당금과 명예 회복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본선행 티켓이 간절하다. 다음 주중에 열릴 AC밀란과의 2차전은 어쩌면 리그 몇 경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시합이 될 것이다. 코쿠 감독은 이 경기에 박지성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헤라클레스전에서 체력을 소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장이자 중원의 사령관은 베이날덤의 갑작스런 부상이 박지성을 불러들였고, 그는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상을 충실히 해냈다. 코쿠 감독과 PSV의 박지성에 대한 신뢰는 이로써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과거에 무언가를 해낸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증명만으로도 더 이상의 의심은 필요없게 된다.
지금 PSV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재정 확충을 위해 지난 시즌의 주전 여럿을 다른 팀으로 보낸 상황에서 90년대 이후 출생 선수들을 대거 보강해 팀을 재편하고 있다. 다행히 시즌 초반의 성적은 나쁘지 않지만, 이런 팀일수록 큰 경기나 위기를 맞게 되면 그 부진의 깊이를 예상하기 어렵다. 팀에 중심을 잡아줄, 감독이 믿고 맡길, 동료들이 무리없이 신뢰할 선수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2005년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을 달성한 PSV에서는 바르셀로나 생활을 마치고 복귀한 필립 코쿠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그리고 이제 그 팀의 감독이 된 코쿠는 박지성에게서 자신의 8년전 모습을 보길 원한다. PSV에서 세 시즌을 뛰다 바르셀로나에서 일곱 시즌을 활약한 뒤 다시 PSV로 돌아온 코쿠의 이력이 박지성과 흡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시의 코쿠보다 지금의 박지성이 더 불리한 위치일지도 모르겠다. 코쿠와 달리 박지성은 외국인이며, 당시 코쿠에 비해 지금 박지성의 동료들은 훨씬 더 어리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전에서 PSV의 선발 11명 가운데 샤르스(84년생)를 뺀 10명이 모두 9X생이었다는 점은 간과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심지어 수지[!]와 동갑인 94년생이 스타팅 멤버 11명 가운데 무려 3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PSV의 올 시즌 성공 여부에 박지성이 일정 부분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헤라클레스전은 그 이유의 일부를 보여준 경기였다.
박지성의 가장 큰 강점은 자신이 속한 팀에 지금 무엇이 필요한 지를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걸맞는 플레이에 충실한다는 데에 있다. 빼어난 동료들이 많은 맨유에서는 보조적인 역할에 충실했다면, 대표팀이나 과거 PSV에서는 팀이 어려울 때마다 자신이 주역으로 나서 해결사 노릇을 해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속한 PSV에서는 그 두 가지 역할이 모두 필요하다. 어린 선수들의 모자란 부분을 메워주는 한편, 팀이 어려울 때는 직접 나서 팔을 걷어부쳐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박지성은 여전히 박지성이다. 그가 QPR에서 낭비된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그의 진가는, 이제 PSV라는 익숙한 둥지, 코쿠라는 든든한 리더와 함께 다시 빛을 발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올 시즌 박지성의 또다른 절창을 보게 될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