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이 불통의 온상·패가망신 도구로
기업 비난하다 입사 낙방… 상사 험담 올리다 감봉도
사생활 벗기기·언어폭력 등 도넘어… 소송전까지 비화
#1. 대학생 이영호(32∙가명)씨는 지난달 한 대기업의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다가 고배를 마셨다. 남부럽지 않은 학벌에 어학연수와 봉사활동 등 ‘스펙’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평소 대기업에 굉장히 비판적인데 왜 지원했나요?”라는 면접관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트위터 팔로어가 3,000명에 달하는 이씨는 평소 자신의 트위터에 재벌의 행태를 비난하는 글을 자주 올렸다. 이씨는 면접에서 낙방한 후 트위터 계정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했다.
#2. 얼마 전 취업에 성공한 회사원 변정숙(26∙가명)씨는 입사하자마자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회사 동기끼리 만든 페이스북에서 상사 험담을 늘어놓고 근무시간에 미용실에 갔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 부장의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변씨는 부랴부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삭제했지만 업무 태만을 이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변씨는 “사적인 영역이라 생각하고 쓴 글들이 결국 나만의 공간이 아니었다”며 “회사 동기들 사이에서도 트위터 경계령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소통 도구로 부상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불통의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등장으로 SNS는 시간과 장소의 경계를 허무는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았지만 이로 인한 폐해와 고통에 시달리는 이른바 ‘SNS 포비아(phobia)’가 확산되고 있다. 소통을 위해 출발한 SNS가 불통을 넘어 고통을 낳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사회 전반에 불신을 조장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불거진 축구선수 기성용의 SNS 논란은 대표적인 사례다. 평소 소신 있는 발언으로 축구팬들의 인기를 모았던 그였지만 공식 페이스북 외에 별도의 페이스북을 개설해 최강희 전 국가대표 축구감독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잇따라 올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4일에는 주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기 선수는 파문이 커지자 SNS를 모두 폐쇄하고 칩거에 들어갔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SNS를 완전한 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적으로 노출되는 곳이기에 평소에 친구들한테 얘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유명인의 경우 SNS에 남긴 글 하나로 논란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SNS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인기 그룹 티아라 멤버 간의 불화설도 화영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가 트위터에 화영을 따돌리는 내용의 글을 그들만의 은어로 주고 받으면서 불거졌다. 이후 화영이 결국 티아라에서 탈퇴하면서 ‘연예인들의 올바른 SNS 사용법’을 주제로 한 이른바 소셜 교육이 한동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SNS에 남긴 글로 인한 연예인의 해명과 그들 간의 소송전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배우 이채영은 트위터에 “심장 버튼을 끕니다”라며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이씨는 곧장 “문학적 의미예요”라고 해명했으나 결국 트위터를 탈퇴하는 소동을 겪었다. 가수 이효리도 지난해 “불편하다고 외면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가 먹고 있는 진실을 보세요”라는 글을 올려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채식을 강요한다며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다.
지난해에는 방송인 강병규가 배우 이병헌과 이민정의 열애설이 불거지자 “트친님들 이XX 얘기해 달라고 조르지 마세요. 아마 조만간 임신 소식이 들릴 겁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이병헌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SNS가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떠오르는 이유는 다른 어떤 소통 도구보다 편의성과 파급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표되는 모바일기기의 대중화는 SNS의 접근성을 대폭 줄였다. 1세대 SNS로 불리는 ‘싸이월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한 뒤 로그인을 해야 하는 과정을 거쳤으나 모바일 시대의 SNS는 마치 일기장을 쓰듯 모든 과정이 간소화됐다.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과 누구나 모바일기기를 통해 SNS에 사생활을 스스럼 없이 올리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점 역시 SNS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이다. SNS를 둘러싼 논란이 ‘디지털 시대가 부른 필화(筆禍)’ 혹은 ‘손가락이 낳은 지화(指禍)’로 지적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SNS에 올린 글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본래 맥락과는 다른 의미로 의미가 확산되면서 논란이 확대 재생산된다”며 “결국 오늘날 SNS 자체가 1인 미디어로 기능하는 이상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개방형 SNS의 역기능이 문제로 떠오르자 지인들끼리만 이용하는 폐쇄형 SNS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NHN이 지난해 8월 출시한 ‘밴드’는 출시 한 달 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넘어서더니 올해 5월 1,000만명을 넘어섰다. NHN 관계자는 “아무에게나 드러나지는 않지만 끼리끼리 소통할 수 있는 은밀함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SNS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름으로 가입하지만 사실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보면 된다”며 “다른 사람과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욕구와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상충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