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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예 시구 신수지 (동영상)
    Sweet Day/삶의 향기 2013. 7. 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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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예 시구' 신수지 "하루에 공 80개 던졌어요"

    일간스포츠 | 손애성 | 입력 2013.07.11 08:03

     

     

     

     



    리듬체조의 선구자였지만 여왕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번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 마운드에 올라섰을 땐 누구보다 눈부신 여왕이었다.

    '리듬체조 원조 요정' 신수지(22·세종대)는 시구 한 번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지난 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스의 경기에 시구자로 나선 그는 왼쪽 다리를 수직으로 들어 올리고 순식간에 상체와 함께 360도 회전했다. 몸을 들어올리자 마자 던진 공은 포수 미트에 정확히 꽂혔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에선 '당신이 평생 볼 수 있는 최고의 시구 중 하나'라고 평했고, 그의 시구를 담은 유투브 동영상은 조회수가 800만 건을 넘었다.

    '일루전(Illusion) 시구'. 신수지는 선수 시절 지겹도록 연마한 자신의 기술을 마운드 위에서 완벽히 재연했다. 신수지는 8일 일간스포츠와 만나 "'백일루전'(Back illusion)으로 알려졌던데, 아니다. 백일루전을 하면 포수를 등지고 서게 된다"며 웃었다. 백일루전은 일루전을 뒤로 도는 기술이다. 신수지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9회 연속 백일루전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친구들과 종종 야구장을 찾았다. 한달여 전 야구장에서 신수지를 발견한 두산 프런트가 그에게 시구를 요청했다. 신수지는 "두산의 김현수 선수와 알고 지내는데, 시구는 '미인만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열외인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기회가 닿았다"며 웃었다. 신수지는 이후 악바리처럼 준비했다. 그는 "속도를 붙이려고 일주일 동안 하루 80개씩 던졌다. 그런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체조 선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연습할 땐 10개 중 8개는 스트라이크로 꽂혔는데, 그러지 못해 속상하다"며 아쉬워했다. 5일 시구땐 포수가 손을 위로 뻗어 잡았다.

    신수지는 손연재(19·연세대) 이전 한국 리듬체조를 이끈 선수다. 한국 선수 중 처음으로 베이징올림픽에 자력으로 진출해 12위에 올랐다. 후배 손연재의 활약도 한국 리듬체조를 알린 신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십대 시절 러시아에 홀로 건너간 그는 텃세를 견디며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 그는 "러시아 선수들이 동양인을 낯설어 했다. 처음엔 선수들이 나와 방을 쓰지 않으려 해 매일 다른 방을 전전했다"고 털어놓았다.

    신수지는 지난해 21세의 어린 나이로 은퇴했다. 발목 인대가 끊어진 채 참가했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수술대에 올랐고 기나긴 재활 과정을 거쳤지만 끝내 매트에선 내려왔다. 그는 "수술대에 올랐을 때 '언제까지나 선수를 할 수는 없다. 곧 끝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차피 오래 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다른 길을 개척하는 게 낫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올해 세종대 대학원에 입학한 신수지는 체육학과 교수가 꿈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직접 길러보고픈 욕심에 전공도 '트레이닝 방법론'을 택할 계획이다. 또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해피타임에서 MC로 활약 중인 그는 리듬체조 해설에도 도전했다. "남들이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 나는 은퇴를 했어요. 처음엔 막막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리듬체조를 통해 나를 알렸고 1인자에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 리듬체조의 선구자로서 자부심이 표정에 가득했다. "제 앞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면 편하게 갔겠죠. 그렇지만 시초라는 게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요. 한국 리듬체조를 이끌었다는 자존감, 그 자존감이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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