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불만 교차, 바깥 오가며 흡연욕 충족…가게 주인들은 '울상'
[CBS노컷뉴스 김지수 기자] "흡연자의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거고. 솔직히 술 마시는 데 담배 빠질 수 있어요?"
"최소한 흡연이 권리라고 생각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불편하다곤 생각 안 해요"
불타는 금요일, 일명 '불금'을 앞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는 퇴근을 앞둔 넥타이 부대가 회사 건물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막간의 수다를 곁들인 흡연을 즐기고 있었다.
“금연 단속 때문에 저녁 식사 자리가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들이 나왔다.
◈ 흡연자들 대체로 '이해',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어
회사원 오모(42) 씨는 "종로 피맛골 쪽 음식점은 대부분 규모가 있어서 금연 단속 대상"이라며 "벽에도 금연 스티커가 붙어있고 불편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은평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조정현(37) 씨도 "다수가 원하면 지키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나도 담배를 피우지만, 청결해야 할 식당 음식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아무래도 식탐이 떨어진다"는 것.
조 씨는 다만 "식당에 들어가면 일단 몰래 담배를 피우려 시도는 해본다"고 했다. 그러다 주인이 "바깥에 나가 피워달라"고 요청하면 '역시나'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양천구 목동에서 만난 김정환(42) 씨는 흡연자임에도 "금연 정책이 더 강화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정부 차원에서 금연을 강조하다 보면 이런저런 게 싫어서라도 담배 끊을 사람이 생길 것"이라며 "점점 구석에 숨어 피우다 보면 금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이 못마땅한 흡연자들도 많다.
서대문구 연희동에 사는 장세진(51) 씨는 "술집에서 술 마시면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할 바에는 아예 담배를 팔지 말라"며 불만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장 씨는 "한 번 찾아갔는데 금연 업소라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발길을 끊는다"며, 금연 도시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생존 수칙'을 드러냈다.
며칠전 성동구 용답동의 한 식당을 찾았다가 눈칫밥만 먹어야 했던 임창길(55) 씨 사정도 비슷하다.
임 씨는 "이제 집에서도 밖에서도 눈치를 100% 보게 됐다"며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느냐"고 호소했다.
◈ 적응 어려운 식당과 술집들 "예상보다 매출 타격 심해"
지난 1일부터 전면 시행된 '금연법' 적용 대상은 면적 150㎡ 이상의 음식점과 술집이다.
지난해 6월 서울 강남대로가 전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 음식점과 술집에서의 흡연도 단속 대상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시행 초반이라 여기저기서 흡연자와 가게 주인 사이에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2층짜리 술집은 테이블 40여 개를 갖출 정도로 규모가 꽤 큰 곳이다. 최근 새로 문을 열고 인테리어에도 신경써서 주변에서 가장 북적이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1일부터 금연 스티커를 눈에 띄게 붙여놓은 이후 손님들 발길이 줄고 있다. “죄송하지만 담배는 나가서 피워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손님들의 불평도 심한 편이다.
이 곳 아르바이트생 조모(24) 씨는 "금연이라고 얘기하면 되돌아가거나 아예 안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다”며 “예상보다 매출에 타격이 심해 피부에 와닿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인근 술집들은 면적이 작아 흡연이 허용되는 곳이 많다. 조 씨는 "단속하려면 다 해야지, 어차피 다 같은 술집 아니냐"고 반문했다.
◈ 일부 가게는 단속 대상인지 놓고도 혼선 가중
직장인들의 저녁 회식 자리가 많은 일식집이나 고깃집 주인들도 고민에 빠졌다.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이대열(39) 씨는 "억울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흡연실을 설치하라지만 손님 받을 테이블 하나가 아쉬운데 어떻게 그걸 치우고 흡연실을 만드냐"는 것이다.
이 씨의 일식집을 찾는 손님 가운데 절반 가량이 흡연자다. 이 씨는 "발길을 되돌리는 손님 하나라도 더 붙잡으려고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흡연 손님들을 앉게 한다"고 했다.
양천구의 고깃집 점주 한모(51) 씨도 "담배 때문에 25명짜리 단체 예약을 날렸다"며 "큰 가게는 담배 피우면 안 되고 작은 가게는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울상지었다.
이러다보니 면적이 150㎡ 안팎인 곳에서는 '나 몰라라' 흡연을 방치하거나, '혹시 몰라' 무조건 금연 방침을 내걸기도 한다.
동대문구 대학가의 한 클럽 겸 술집 관계자 김모(26) 씨는 "우리 가게는 150㎡가 간신히 안 되는데 단속 나왔을 때 대충 벌금을 부과할 지도 몰라 걱정된다"며 "화장실에 복도까지 따지면 넘길 지도 몰라 그냥 '금연'이라고 알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곳을 찾는 대학생 등 젊은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불금'이나 주말이면 밤을 잊은 채 음악에 몸을 흔들며 음주와 흡연을 즐기던 곳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담배는 화장실에 가서 피워달라고 부탁해도 사람이 미어터질 때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며 "단속이 나오면 일단 재떨이부터 치우고 환풍기를 켠다"고 했다.
"규정 면적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을 뿐더러, 금연 스티커도 붙였고 손님에게 설명까지 했는데 어쩌란 말이냐"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술집과는 달리 대부분의 일반 음식점에서는 손님이나 가게 주인들이 대체로 금연법 시행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가족들과 찾은 식당에서 담배 연기로 불쾌함을 느끼는 일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