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펼치는 한인들. 추신수는 고마운 마음에 정성껏 사인을 해주려 노력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요즘 경기장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야구선수가 아닌 복서같다’라고요. 그것도 때리는 복서가 아닌 주로 맞는 복서라는 거죠. 야구장에 나가서 상대 투수의 볼에 자주 얻어맞고 나가는 걸 빗댄 아내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지난 3일(한국 시각) 피츠버그 원정 경기에서 몸에 맞는 공이 2개나 나왔을 때는 경기 내내 다리가 저리고 욱신거리는 통에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날 선발투수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클리블랜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진마 고메즈였습니다.
고메즈가 누구인지 혹시 아시나요? 제가 지난해 캔자스시티 조나단 산체스의 투구에 무릎을 맞았을 때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진 후 클리블랜드 선발이었던 진마 고메즈가 상대팀 타자에게 몸에 맞는 보복성 투구를 하면서 퇴장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고메즈가 올해는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고 저와 맞붙게 된 거였죠. 산체스가 저한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고 해서 다음 이닝 때 고메즈가 보복성 투구를 했고 벌금까지 물었는데, 그 선수가 이번에는 절 상대로 몸에 맞는 볼을 두 개나 던졌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요.
저도, 또 고메즈도 그 볼이 절대 고의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고메도 두 번째 몸에 맞는 볼이 나왔을 때는 많이 놀라고 미안해하는 표정이었으니까요.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17개의 사구를 기록 중인데, 이게 한 시즌 최다 사구 타이 기록을 이뤘다고 하네요. 맞는 건 부상 위험만 없다면 참을만 한데, 맞아도 너무 많이 맞는 것 같아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클리블랜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피츠버그 진마 고메즈가 추신수를 상대로 두 개의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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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저를 향해 ‘인간 방패’라고 부르더라고요. 맞으면서 돈 버는 야구선수라고^^. 머리나 손가락 등의 부상만 안 당하길 바랍니다. 저도, 또 상대투수도 몸쪽 공에 대해 양보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투수는 더욱 더 집요하게 몸쪽 공으로 승부하려 들 것이고, 저는 저대로 사구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타격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에 더욱 바짝 붙어서 공격을 할 겁니다. 그래도 이 정도 맞아서 별 탈 없으면 괜찮은 게 아닌가 싶은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제가 요즘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조금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4일( 한국 시각) 콜로라도전에서 8회 선두타자로 나갔다가 삼진아웃 판정을 받았을 때는 순간 욱 하는 심정이 되더라고요. 그 공은 분명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볼이었거든요. 그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면서 삼진아웃 시키는 심판을 보며 조금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덕아웃으로 들어와선 이내 후회했습니다. 그 분이 일부러 그런 판정을 내리신 것은 아닐 테고, 나중에 그 경기 장면을 다시 보신다면 당신의 판정이 틀렸다는 걸 아실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4일 경기 뿐만 아니라 3일 피츠버그전에서도 8회 2아웃 만루 상황이었을 때도 분명 볼이라고 생각한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더라고요. 홈런은 상황에 따라서 번복될 때도 있지만, 볼 판정은 절대 번복이 안 되잖아요. 속상해 해봤자 아무 소용 없는 것이고, 그런 애매한 판정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제가 더 잘하면 되는 것이겠죠.
피츠버그전, 8회 2아웃 만루상황에서 볼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한 심판과 그를 쳐다보는 추신수.(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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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저도 심판의 오심에 이득을 본 적도 있거든요. 분명 스트라이크인데 볼이라고 선언해서 볼넷을 얻어 1루로 걸어 나가거나 유리한 볼 카운트로 승부를 펼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심판한테 스트라이크인데 왜 볼이라 하느냐며 항의하지는 못하잖아요^^.
5일(한국 시각) 경기 중 타석에 나서는데 전날 주심을 보셨던 심판이 웃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시네요. ‘어제 경기를 다시 보니까 자기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라고요. 결과를 떠나서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실수를 인정하고 직접 얘기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훈련 전 무빈이가 신시내티 홈구장에서 저와 캐치볼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새 체격이 훌쩍 커진 바람에 글러브와 방망이를 모두 새로 사줘야 했습니다. 그라운드를 직접 밟아본 무빈이가 저한테 하는 말이 재미있네요. ‘아빠, 신시내티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인 것 같아!’그런데 그 녀석은 클리블랜드에 있을 때도 클리블랜드가 최고의 팀이라고 했거든요^^.
*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몸에 맞는 볼이 속출해도, 부상 위험만 없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추신수. 타자의 특성상 하루 하루의 경기 결과에 대해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지만, 오늘 패했다고 해서 크게 아파하지도, 오늘 이겼다고 해서 크게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추신수는 목표지점을 향해 앞만 보고 뛰어갈 뿐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