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이모(29·여)씨는 젊은 엄마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즐겨 봐 왔다. ‘미시’ 엄마들의 육아·요리·살림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인데, 요즘은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에 일부러 멀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의 생년월일과 이름부터 병원에 다닌 기록, 사용하는 유아용품 가격, 거의 모든 순간을 포착한 듯한 일상생활 사진까지 ‘개인정보’가 너무 많이 공개돼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육아 블로그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 집안의 재력까지 가늠될 정도로 아이의 모든 걸 알 수 있다”며 “이런 정보가 범죄에 이용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셰어런츠(sharents)’들이 늘면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셰어런츠는 공유를 뜻하는 ‘셰어(share)’와 ‘부모(parents)’의 합성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 셰어런츠가 남기는 ‘디지털 발자국’ 때문에 아이들이 미래에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가 지난해 선정한 육아 부문 파워블로거는 11명이다. 이들의 블로거와 연결돼 있는 온라인 ‘이웃’은 평균 1만7000여명. 한 블로거는 이웃이 5만6500여명이나 된다. 이렇다보니 유명 블로거의 자녀를 낯선 이가 길에서 알아보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최모(34·여)씨는 “일산의 한 백화점에서 갔는데 블로그에서 보던 아이가 엄마랑 와 있었다. 오프라인에선 처음 본 건데 금세 알아보고 그 엄마와 인사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노출되는 정보가 악용될 우려도 크다.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한 유괴사건은 블로그에 공개된 아기 실명과 사진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육아 블로거들이 블로그 공개 범위를 제한하고 아기 실명을 닉네임으로 변경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신상을 노출시키는 것은 범죄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려면 특히 아이의 동선(動線)이나 사진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SNS에 올라오는 부모의 ‘아이 자랑’에 피로감을 느껴 ‘셰어런팅(sharenting)’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블로그는 방문하지 않으면 되지만,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는 내 계정에 올라오는 친구와 지인들의 글·사진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켤 때마다 매일 아기 사진만 잔뜩 떠 있어 짜증스럽다고 호소한다.
회사원 김모(35)씨는 지난주 스마트폰에서 카카오스토리 앱을 삭제했다. 김씨는 “한창 아이 낳아 기르는 친구들이 너나없이 애 사진을 올리는 통에 신물이 났다. 친구들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매일 봐야 하는 내 입장에선 괴로웠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이들을 위한 앱도 출시됐다. ‘언베이비닷미(Unbaby.me)’란 앱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아기 사진을 고양이 강아지 등 애완동물이나 베이컨 같은 음식 사진으로 바꿔준다. 이 앱에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이용자는 지난달 중순 9만명에서 한 달 만에 100만명으로 증가했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채규만 교수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귀엽다고 아기 기저귀나 성기 사진까지 마구 올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기피하게 된다”며 “나르시즘적 자기만족에 집착하기보다 남을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