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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링컨'이 주는 교훈
    Smart Life/스마트 소식 2013. 3. 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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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링컨'이 주는 교훈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링컨을 상영하라SBS

    | 주영진 기자 | 입력 2013.03.29 09:24 | 수정 2013.03.29 11:39

    미국 제 16대 대통령 링컨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흑인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내전을 불사하면서까지 미국 연방을 지켜내 오늘의 미합중국을 가능하게 했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통령이죠. 지금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가면 링컨 기념관이 포토맥 강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곳에 앉아 있는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 기념탑과 연방 의사당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링컨이여, 미국을 지켜주소서.' 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거죠.

    제 기억 속의 링컨은 어린 시절 극도로 가난한 집에서 자라나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배움과 지식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꿈 많고 의지가 강했던 청년이었습니다. 새 어머니가 들어오면서부터 옆집 변호사로부터 마음껏 책을 빌려 읽게 됐는데,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잠이 든 소년 링컨, 밤새 비가 내리고, 누추한 오두막 지붕 틈새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그만 책이 다 젖어 버렸죠. 그래도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변호사 아저씨한테 얘기했더니 꾸지람이 아닌 칭찬을 받고 그 뒤로도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날 한 할머니에게 거스름돈을 적게 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밤늦게 할머니를 찾아가 남은 잔돈을 돌려줘서 칭찬받았다는 얘기도요.

    2008년 여름부터 1년 동안의 미국 연수, 그리고 2010년 1월부터 3년동안의 특파원 생활동안 정치인 링컨의 모습을 읽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매일처럼 링컨 기념관을 가득 메우는 미국인들의 모습에서는 링컨에 대한 흠모와 존경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링컨이 암살당하던 포드 극장과 숨을 거뒀던 포드 극장 길 건너편 조그만 타운 하우스에서는 역사속으로 퇴장한 거인의 안타까운 마지막 순간을 실감했습니다. 작은 백악관으로 불렸던 워싱턴DC 안의 링컨 오두막은 휴가 때면 링컨 대통령이 찾아가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특파원 생활이 마무리에 접어든 2012년 가을,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이라는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대선을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서, 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도전이 임박한 시점에 개봉돼 우리나라 같았으면 야당인 공화당이 난리 칠 법도 한 일이었지만 영화 링컨은 정말 자연스럽게 미국 백악관은 물론 연방의사당에서까지 특별 상영됐습니다. 재정절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링컨이 어떻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했는지, 어떻게 반대쪽을 설득하고 타협해 갔는지를 배워보겠다는, 미국 정치인들의 실용적인 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링컨은 흑백필름을 연상케 하는 참혹한 남북전쟁의 전투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전장을 찾아 흑인 병사들과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는 링컨의 지친 모습이 화면을 채웁니다. 흑인 병사들의 월급을 올려달라는 청원에 이어 링컨을 흠모하는 젊은 백인 병사들이 자신들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지켜봤다며 연설 내용을 암송하고, 이어 흑인 병사가 빗속으로 사라지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입니다. 그리고는 피말리는 워싱턴의 정치 속으로 영화는 성큼 들어갑니다.

    수정 헌법 13조, 즉 범죄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 땅과 미국의 사법권이 지배하는 곳 그 어디에서도 노예제도는 폐지될 것이라는 헌법 조항을 만들려는 링컨과 여기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기싸움이 치열합니다. (미국 수정헌법 13조 1. Neither slavery nor involuntary servitude, except as a punishment for crime whereof the party shall have been duly convicted, shall exist within the United States, or any place subject to their jurisdiction.)

    그런데 링컨은 어이 없게도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합니다. 노예제도 폐지를 명분으로 내전까지 불사한 상황에서 수정헌법 13조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명분이었습니다. 이 때 남북 전쟁은 링컨이 이끄는 북군의 승리로 굳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종전이 얼마 안 남은 거죠. 링컨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헌법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종전이 되고 나서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싶어했던 남부의 주들이 미연방에 재가입하게 되면 보나마나 수정헌법 13조에 반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정헌법 13조의 미 하원 통과는 불가능해 집니다. 그런데 수정헌법 13조를 관철하려다가는 자칫 전쟁이 더 길어지면서 미국인들의 희생이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노예제 폐지와 미 연방의 유지라는 정치적 명분과 상관없이 전쟁의 참상은 끔찍하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희생은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남북전쟁 기간 무려 40-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링컨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남부를 제외한 북부만의 연방을 원했던 민주당은 노예제 폐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도 링컨을 돕는 사람들은 수정헌법 13조의 표결을 미루자고 합니다. 그 게 정치라고,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그런데 링컨은 거부합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미국을 위해, 미국의 정신을 위해,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한 신의 뜻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명확히 합니다. 여기에 둘째 아들을 잃은 영부인의 히스테리도 견뎌야 하고,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전하겠다고 악을 쓰는 맏아들의 반항도 참아내야 하는 삼중, 사중고속에서도 링컨은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링컨은 도덕적인 지도자라는 미덕을 스스로 포기합니다.

    먼저 표결을 종전 뒤로 미루자는 공화당 온건파에게는 종전 협상의 전권을 부여합니다. 무슨 타협안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그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종전 전 표결로 공화당 온건파를 끌어들입니다. 수정헌법 가결을 위해 부족한 20표는 다음 선거에서 낙선이 분명한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보충하기로 합니다. 이 때 등장하는 게 오늘날의 로비스트를 연상케 하는 정치 로비꾼들입니다. 포섭 대상 민주당 의원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미끼(공직과 돈)의 크기를 결정하고 민주당 의원들을 쫓아 다닙니다. 처음에는 이들의 활동을 모른 척 하던 링컨은 표결이 임박했는데도 상황이 진전되지 않자 직접 이들을 찾아가 다그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링컨의 노예제 폐지 신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흑인에게도 투표권을 주장하던 공화당 강경파의 대표 의원이 마지막에 중요한 역할로 등장합니다. 바로 표결 당일 연설 순서에서 자신의 신념을 밝혀야 하는데, 급진적인 자신의 주장을 밝혔다가는 민주당측이 반발하면서 20명 포섭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스티븐스 의원은 무조건적인 흑백평등에서 후퇴해 법앞의 평등이라는 논리로 민주당의 반감을 완화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스티븐스가 이렇게 물러서는 데 링컨의 설득이 주효했죠. 바로 이 논리였습니다.

    "나침반은 정북의 방향을 가리켜 주지만, 그 길에 있는 늪, 사막과 협곡은 알려주지 않는다. 나침반이 가리킨 대로 간다고 해서 늪에 빠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큰 키에 구부정한 걸음걸이, 낮으면서도 약간 갈라지는 톤으로 링컨역을 소화해낸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처럼 생각될 정도로 그의 연기는 탁월했습니다. 화면 속 링컨이 정말 링컨처럼 여겨졌으니까요. 종전 후 6일되던 날 포드 극장에서 코메디 연극을 보다가 남부 분리주의자 존 윌크스가 쏜 총에 맞은 링컨, 길 건너 집으로 옮겨진 링컨은 어머니 뱃속의 아기처럼 구부리고 있었습니다. 링컨은 저녁에 총을 맞고 그 다음날 아침에 숨을 거뒀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생사의 갈림길에서 투쟁하던 링컨은 그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역사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비열할 정도로 타협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관철해 내고야 마는 링컨에게서 지금의 미국 정치인들은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라고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습니다.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 직후 백악관에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날마다 싸우던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사이좋게 연방의사당에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해가 바뀌어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여야는 정부조직개편 문제를 놓고 협상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대통령은 결기 어린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야당을 비판했습니다. 장막속에서 진행된 여야 협상에서 여당은 결국 야당에 대폭 양보했습니다. 정부조직개편이 정말로 새로운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근본이 되는 일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관철했어야 할 텐데, 50일이 넘는 힘겨루기 끝에 여당은 상처뿐인 양보로 협상을 끝냈습니다. 혹시 그 전에 영화 링컨을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봤다면 협상결과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이라도 이 영화를 본다면, 앞으로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만큼 영화 링컨이 주는 울림은 큽니다.

    아래 기사는 제가 지난해 11월부터 8시뉴스에 심어달라고 조르며 썼던 기사입니다.

    참고하세요.

    <앵커>

    요즘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을 다룬 영화가 인기입니다.

    남북전쟁이라는 국가 위기상황을 극복해 낸 링컨의 지도력이 경제침체를 겪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워싱턴 주영진 특파원입니다.

    <기자>

    막바지에 접어든 미국 남북전쟁의 처절한 전투장면이 스크린을 가득 메웁니다.

    링컨 암살 전 넉 달을 그린 이 영화에서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와 연방의 존속을 위해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권모술수도 서슴지 않는 냉철한 정치인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대사 : 인간 존엄성의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수많은 희생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국가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낸 링컨의 지도력을 성공적으로 재확인하려는 미국인들이 몰리면서 영화 링컨은 개봉 한 달 만에 9백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러셀 보겐하임/관객 : 굉장한 영화였습니다. 링컨은 도덕적인 인간인 동시에 매우 실용적인 정치인이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 : 학창시절 저는 지도자이자 역할 모델, 뛰어난 사상가로서 저는 항상 링컨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타임지는 지난달 미국 대선 직전 영화 속 링컨을 표지모델로 내세우면서 정치적 이상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실현 방안을 고민하고 찾아냈던 링컨의 지도력을 미국 정치인들이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영화 링컨은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지난달(2012년 11월) 15일 백악관에서 상영된 데 이어

    다음 주에는(2012년 12월 중순) 상하원의원들을 위해 연방의사당에서 특별 상영될 예정입니다.

    워싱턴에서 SBS 주영진입니다.
    주영진 기자bomn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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