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필요하면 주변 은행 어디에서나 돈을 찾을 수 있고, 심지어 가만히 앉아 스마트폰으로 계좌 이체는 물론 금융상품도 가입할 수 있는 시대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온라인시스템, 순번대기표,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 등이 은행의 모습을 확 바꾸어 놓은 주역들이다.
1972년 11월 외환은행은 최초로 온라인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 신문은 ‘먼 거리를 여행하거나 출장 갈 때 돈을 들고 가거나 송금할 필요 없이 통장과 도장만 가지면 해당 은행지점에서 필요액을 꺼낼 수 있다’고 썼다. 이전엔 지점 간 거래내역 공유가 어려워 A지점에 입금을 했으면 A지점에서만 돈을 찾을 수 있었다. 온라인제가 도입되면서 비로소 현재와 같이 어디서든 은행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하지만 잦은 정전과 컴퓨터 결함 등 시스템 불안정으로 온라인제가 정착되는 데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70·80년대에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선 손님이 모두 영업점에 방문해야 했다. 지점당 직원 수는 평균 100명이나 됐고, 규모가 큰 곳은 200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땐 지금처럼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무조건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창구 직원마다 일하는 속도가 달라 줄을 잘못서면 늦게 온 사람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줄이 길어도 속도가 빠른 행원 앞에 줄을 섰고, 일부 남성 손님들은 얼굴이 예쁜 행원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다.
절정은 월말이었다. 공과금을 내려는 사람들이 몰려 은행은 도떼기시장으로 변했다. 기한이 지나면 연체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은행 마감시간이 다가오면 줄 서는 문제로 싸움이 나기도 했다. 당시 재무부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납기일을 분산하는 방안을 검토할 정도였다.
국민은행은 90년 10월 순번대기표제도를 도입했다. 번호표 자동발급기를 설치해 순서에 따라 대기했다가 각 창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단순한 구조지만 오랜 줄서기에 짜증났던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은행 영업점이 줄어들게 된 시발점은 ATM 도입이다. 90년 7월 조흥은행이 국내 은행 최초로 서울 명동지점과 영등포지점에 설치한 이후 93년 들어 ATM은 급속히 보급됐다. 지금은 친절을 생명으로 하는 은행이지만 당시엔 불친절하고 거래를 위해 한참 줄을 서야 했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 없고 은행이 문을 닫아도 이용할 수 있는 ATM은 고객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이 할 업무를 기계가 대신하면서 직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예 직원 없이 ATM과 CD기만 두고 운영되는 무인점포도 늘었다. 물론 초기엔 전산망 고장으로 돈이 제대로 인출되지 않는 등 문제도 발생했다.
이후 변화를 이끈 것은 인터넷뱅킹이다. PC뱅킹이나 텔레뱅킹 등 은행 접근 방식이 다양화됐지만 99년 도입된 인터넷뱅킹만큼 획기적이진 않았다. 99년 8월 인터넷뱅킹 거래는 전체 은행 거래에 2%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30%를 넘어섰다. 물론 초기엔 인터넷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고 인터넷뱅킹을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도 많아 은행 창구보다 인터넷뱅킹으로 거래를 마치는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스마트뱅킹으로 은행은 또 한번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뱅킹 사용자 수는 2807만명으로 전분기 말보다 17.1% 늘었다. 무선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면서 이제 은행은 개인의 손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은행은 새로운 변화에 발맞춰 은행 애플리케이션(앱)과 맞춤 서비스 제공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