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Day/삶의 향기

빈대떡 어원은… 귀빈 접대하던 떡·빈자의 떡 說 등…

룸 다나와 2013. 5. 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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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 어원은… 귀빈 접대하던 떡·빈자의 떡 說 등… 한자 ‘餠藷’서 유래 주장도

 

순박한 빈대떡과 텁텁한 막걸리는 궁합이 잘 맞는다. 빈대떡은 정 많고 구수한 한국 서민을 닮은 음식이다. 2009년 도심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에서 시작돼 제일은행 본점으로 이어지던 피맛길에는 회사원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대폿집이 즐비했다. 피맛골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 가난한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자 애주가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시인통신’(일명 시통)이 있었다. 또한 빈대떡 대폿집인 열차집, 삼치·굴비·꽁치·고등어 등을 구워 팔던 생선구이집인 대림식당과 역시 불판 석쇠에서 ‘고삼(고등어와 삼치)’‘고갈비(고등어갈비)’ 등을 굽던 함흥집, 호일을 깐 불판 위에서 매운 낚지와 소시지 베이컨, 콩나물을 함께 볶았던 서린식당 등이 몰려 있었다. 골목 안 맛집들은 종로1가 재개발 바람 속에 뿔뿔이 흩어졌다. 열차집과 함께 피맛길 빈대떡 대폿집을 대표했던 청일집도 2010년 2월 피맛길을 떠났다. 청일집은 1945년 광복 직후 지금의 교보문고 뒤편에 문을 연 뒤 선술집 골목에서 가장 오랫동안 영업을 해왔다. 지금은 르메이에르 종로 타운으로 옮겼다. 기존에 청일집 벽에 가득 찼던 낙서들, 번철과 맷돌, 막걸리잔과 주방용품 등은 서울역사박물관에 통째로 기증됐다.

한복남의 노래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빈대떡은 김치, 불고기와 함께 3대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녹두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 불린 뒤 맷돌에 갈아서 만든 반죽을 돼지기름으로 부쳐내는 게 요리법이다. 빈대떡은 한반도 전역에서 먹던 음식이다. 녹두가 흔했기 때문이다. 빈대떡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과 관련, 여러 설이 전한다. 가장 흔한 게 빈대(賓待)떡, 즉 귀빈을 접대하는 떡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다.

최세진이 쓴 ‘박통사언해’ 등의 문헌을 예로 들어 병저(餠藷·밀가루나 옥수수 수수 등을 갈아 납작하게 부친 떡)의 중국식 발음인 ‘빙쳐’에서 차츰 ‘빈대’로 바뀌었다는 설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빈대떡에서 흥미롭게 봐야 하는 것은 ‘빈대전’이 아니라 ‘빈대떡’이라고 한 대목이다. 조선 시대 흉년이 들면 부자들이 큼지막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 빈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빈자(貧者), 즉 가난한 사람들의 떡이어서 빈자떡이라고 하다가 빈대떡으로 바뀌었다는 것. 민초들의 끼니 걱정을 해결하고, 허기를 달래주다 보니 ‘전’이 아닌 ‘떡’이 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1950년대 대폿집 이름으로 유독 ‘과부집’‘쌍과부집’ 같은 이름이 많은데 이는 전쟁 미망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장사가 빈대떡장사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600년 서울의 기억을 가장 오래 품어왔고 뒷골목 문화를 대표하던 피맛골은 우리가 너무 쉽게 허물어버린 귀중한 ‘문화유산’이었다.